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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구

김흥구(1978~)는 한국 근, 현대에 나타난 특정한 사건 속에 자리한 개별적 존재의 기억을 탐색하고 있다. 삶과 죽음에 관한 개인의 시간, 개인의 시간에서 비롯된 집단의 기억. 기록되지 못한 기억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되고 전승되는지를 지켜보며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각각의 삶과 죽음의 기억을 겹치고 반복해 보여줌으로써 비극의 전체적 구조와 의미를 되묻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했다. <좀녜>(2003~2013) 시리즈로 개인전을 열고 사진집을 출간했다. ​제 8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 ‘GEO’ 올림푸스 포토그래피 어워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으며, ​현재 제주 4.3을 배경으로 한 <트멍>(2013~) 연작으로 섬과 육지를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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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

‘그 스스로의 욕망이면서 그 욕망의 바깥에 비껴나 있는 사물들의 이름.
무표정한 배경 속에서 표정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사물들의 얼굴. 구겨진 창,
샛노랗게 타들어 가는 해바라기, 소망, 구름을 잡고 있는 전선들,
꿈의 파편으로 박혀 있는 아이들, 초록 이파리들.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
꾸역꾸역 몰려드는 졸음들. 네 꿈의 바깥. 네 심장의 바깥. 네 웃음의 바깥…… 바깥.’
88서울올림픽을 앞둔 정부는 도시 미관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를 앞세워 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던 빈민촌들을 철거했다. 수많은 빈민들이 도시의 바깥으로 밀려 나갔다. 정부는 갈 곳 없는 빈민들이 도시의 반대편에 모여드는 것을 묵인했고, 마을 주변에 거대한 울타리를 쳐 밖에서 판잣집들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570번지, 그러나 그 어떤 지도에도 없는 유령 마을. 대한민국 최대의 무허가 판자촌 ‘구룡마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구룡마을 주민들의 대부분은 수도와 전기, 변변한 화장실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열악한 거주 환경에 처해 있다. 그리고 무허가 주택이라는 이유로 상당 부분 주민등록 등재도 되어 있지 않다. 최근 또 다시 개발의 물결에 요동치는 구룡마을.
이제 집은 더 이상 사람들이 모여 꿈을 나누는 공간이 아니다. 집이 곧 꿈이며, 집이 곧 삶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지금 바로 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N

문래동

일제강점기 방직공장이 들어서면서 일본인들이 사옥동(絲屋洞)이라 불렀던 문래동은 8.15 광복 후 문익점의 목화 전래지라는 뜻에서 지금의 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80년대 문래동은 잘나가는 철공소가 즐비하던 곳으로 철제 상가 지구로 유명했던 곳이다.
그러나 그렇게 이름을 떨친 것도 잠시, 그 힘 있고 견고해 보이던 철공소들도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쓰임을 다한 쇳물처럼 하나둘씩 녹아내렸다. 산업이 쇠퇴하면서 문래동을 가득 채웠던 철공소들이 문을 닫거나 교외로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상권이 줄어들면서 비어 있는 건물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예술가들이 찾았다.
한때 국가 산업을 책임 지던 곳이었으나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던 철강 골목이 예술과 만나 활기를 찾았다. 낮은 철재 상가, 밤은 예술가들의 놀이터. 그러나 젠트리피케이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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